시집 인도네시아/시집 "인도네시아"

[스크랩] 김주명 시집 <인도네시아> 해설

롬복시인 2014. 12. 14. 00:29

 

 

 

김주명 시집 <인도네시아> 해설

기차를 타고 인도네시아로 떠난 시인

박윤배 (시인)

 

 

1.

 어느 날 문득 인도네시아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김주명 시인은 벌써 거기에 가 있었다. 거기에 가 있지 않으면 안 될 어떤 당위성 같은 것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시집을 내기 위해 보내온 그의 시편들은 절박했다. 절박함을 감추기 위해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 대부분 시에 녹아있는 녹말가루 같은 앙금의 외로움들을 어떻게 참았는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누구의 어떤 위로도 그에겐 필요치 않아 보인다. 그것은 머무는 것이나 떠나는 것이나 결국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론가 간다는 커다란 명제 앞에 있기 때문이다. 지구라는 작은 둘레에서 아등바등 현실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것이고 보면 그다지 애달프고 쓸쓸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여 그의 시들을 바라봄에 있어 이곳과 저곳의 경계는 단지 선입관에 불과하다. 이곳이 아닌 그곳에 떠도는 말들은 그에겐 신비로움으로 다가올 것이고 상반되게 생각해보면 모국어가 엄청나게 그리워 뭔가를 밤새 쏟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시인은 그리움을 시로 승화시켜 야자수 나무 한그루를 키워내더니 수많은 그늘을 만들어냈다.

 고국에 있을 때 내가 만난 김주명 시인은 문화해설사로, 모 잡지의 편집 일로,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통역을 담당하는 등 나름의 입지가 있었다. 국제 재즈페스티벌 개최에서도 운영과 진행에 있어 중심역할을 한바 있으며 수상가옥(대구시창작원) 1기 수료 후 사무국장을 맡아 형상시문학회 발족에도 많은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나를 만나기 전의 삶은 정확한 근거가 없으므로 말할 수는 없고 이따금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시에서 가정사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것은 또한 허구와 진실을 시인들이 혼용하여 시로 재창조하기도 하므로 그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그가 기차를 동경하고 기차 안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풍광들을 그의 어린 눈은 신비로워했다는 것은 그의 시 쓰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옥양목 같은 너울이

기억 속 동대구역과 겹쳐진다

기차를 좋아했던 아이는

엄마 등에 업혀 서울로 치료받으러 가던 날

모조리 외우고도 모자라 그림으로 그렸던

기차역에서 시작된 나의 시詩

엉김 없는 너울이 펄럭였다

모이고 헤쳐져 베링해도 갈 수 있다는데

보도블록 사이로 발목에 엉겨 붙는 들풀 몇 가닥

질기게도 놓아주질 않는다

언제나 괴로운 건 나였다

두둑! 발길질 한 번에 빠져나올 수도 있겠지만

애초부터 내가 잘못 서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플랫폼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응시한다

이윽고 내가

기다리던 달

-김주명 시집 2부 4번 시<고백>전문

 

 그는 유난히 기차를 좋아했었고 어머니가 서울로 치료받으러 가는 중에 등에 업혀서도 새롭게 다가오는 풍경들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내려고 했다고 고백한다. 이미 시를 쓸 수밖에 없는, 머무름이 아닌 떠남의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자신을 가장 진솔하게 드러낸 시가 아닐까. 이는 엉김 없는 너울로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정박한다는 행위에 대하여, 삶이 이와 다르지 않음에 대하여, 갑갑증으로 애초부터 내가 잘못 서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에게 있어 기차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도 기차에 얽힌 기억은 한 편의 시 속 枕木으로 남아 있다.

 

남성현 터널이 내려다보는 곳

백합공원묘지 비탈길에 침목枕木이 놓여 있다

아직 폐기름 마르지 않은

굵은 나사못 뽑힌 몸이 돌아와

계단이 되고 있다

터널을 빠져나온 기차는 언제나 자진모리

모난 자갈밭에 등 대던 맨 가죽

지상의 떨림 다 받아 내던

생生이 누운 것이다

낙동강 철교가 끊어지던 날

아버지 팔꿈치도 끊어졌고

단단히 붙인다는 게

어긋난 멍에처럼 굳어버린 오른팔

버틴 삶, 딱 육십을 끝으로

비탈의 계단이 되었다

미간 주름에 배여든 먼 바다 노을

터널 속으로 빨려든다

- 김주명 시 <침목枕木> 전문

 

 기차가 지나가는 길에 깔렸던 침목이 아버지가 누운 공원묘원의 비탈에 누워있는 것을 그는 발견한다. 그렇게 아버지를 따라다닌 운명이 자신의 유전인자 속에도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가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난 이유를 물을 필요는 없다. 묻는다고 해도 에베레스트를 지독하게 사랑했던 영국의 말로리 경이 그랬듯이 “인도네시아가 거기에 있어서 갔다”라고 그는 답할 것이다.

 

 

2.

 그의 시에는 “자유 한가?” 라는 자문의 말이 가끔 나온다. 김주명은 늘 자신이 “자유 한가?”를 되묻는 버릇이 있는 듯하다. 그가 이번에 발간하는 첫 시집에 있어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초기의 시들은 4부에 해당하는 시들일 것이다. 아마도 부끄러워 뒤편에 배치한 듯 보이나 초기에 쓴 시들에서 그는 존재론적인 탐색으로의 시쓰기를 통한 자기 성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여 몇 편 살펴보면

<드라이플라워> <반성反省> < 참회> < 능소화 일기 ><환승換乘입니다> 등 제하의 시들이 대게 그러하다. 그중 두 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참회나무 있다지요

동화사, 마애불 지나

대웅전 가는 길에

참회나무 있지요

가지가 가늘어

싸리나무 같지만

참회나무 이름표만은

꼭 붙들고 있지요

올겨울 더 춥고 눈이 많았는데도

참회나무는 미리 잎을 다 버려서

눈이 쌓이지 않았다지요

큰 소나무, 전나무 가지가 툭툭

꺾여 나가도

참회나무는 휘청거릴 뿐

이름표 하나를

놓치지 않았지요

그래서

가렵던 참회나무 등엔

손톱자국 줄줄이

새잎 내고 있다지요

-김주명 시 <참회> 전문

 

 

 그날 저녁, 마트에서 조개들을 만났다 사각 비닐 팩에 꽁꽁 얼려져 있었다 내란 음모에 가담도 못해보고 잡힌 유민流民의 형틀 같았다 껍질이 없으니 나와 동족인지 알 수 없지만, 벗은 아픔일까 맨살에서 스며나온 점액질에 나는 발 묶였다

 우마牛馬의 수레를 타고 온 내게 버스는 6분 후에 도착한다고 안내판이 일러 준다

바다로 가는 길은 졸음일까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열반에 든 석고 반죽처럼 꿈쩍도 없다 제법 익숙한 노래들을 안내 방송이 연신 잘라 먹는다 점점이 어깨 벌어진 네온 간판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진다는 생각은 결코 녹아드는 졸음을 가두지 못했다

 고개 떨어뜨릴 때마다 마주보게 되는 얼굴,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바다는 침잠된 삶의 끝에서 푸르렀다 종점이라고 여기가? 등 떠밀리듯 내려선 여기는 칼바위 갯골, 손 뻗어 몰려드는 밀물이 내 몸의 손잡이를 잡고 첫발을 딛고 있다

- 김주명 시<환승換乘입니다> 전문

 

 먼저 시<참회>는 참회나무를 데리고 와서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겨울 동화사 비탈길에 있는 그 나무가 하필이면 참회나무인지, 정확한 학명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나무는 이미 참회라는 명패를 달았고 여느 나무보다 잎을 먼저 버렸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시인은 이렇듯 집착의 마음을 내려놓음으로써 자신이 가벼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여 나무와 자신은 관계로 얽히게 된 것이다. 눈 안에 들어와서 마음의 문을 열고 가려운 등을 긁는다. 참회란 그런 것이다. 긁힌 자리, 스스로 긁은 자리 핏물에 주르르 흐르도록 하는 것이 참회이고 그 피는 봄날 새잎으로 환치될 때 여느 나무와 달리 시인의 나무는 참회라는 명찰을 달게 되는 것을 이미지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무렵의 초기 시들이 대부분 이미지를 끌고 다닌다. 그러한 이미지는 상징이거나 알레고리를 형성하게 되는데 아마도 4부를 제외한 시들은 이러한 자신의 시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행위를 통한 동작의 요소를 가미하고 있는 것이 그가 한 권의 시집 안에서 변모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또 한 편의 시 <환승換乘입니다>는 그가 시인으로서 첫발을 내딛었던 등단작이다. 이미 널리 세상에 알려진 시로서 평사리문학대상을 받은 시이다. 이 시가 수상작이 된 후 시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모방하며 존재론적인 탐색으로서의 새로운 등가물을 한편의 시안에서 어떻게 녹여내야 할지를 텍스트로 삼아 공부하기도 하는 시이다. 시점 또한 한 편의 시에서 편안하게 이동됨과 동시에 할 말을 다 하고 있다. 시간의 폭과 함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응축시킨 수작임을 자타가 공인한다. 환승이라는 말은 단순하게 버스에서 버스로 지하철에서 지하철로 지하철에서 버스로 옮겨갈 때 멘트로 나오는 말을 넘어서서 인생의 환승점과 우주와 우주까지 환승을 꿈꾸게 하는 알레고리를 던져주고 있는 시이다. 결국 그는 인도네시아로 환승을 한 셈이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환승에는 알고 보면 구체적이거나 사실 혹은 현실의 환승은 아니다. 어쩌면 자유로의 환승은 아닐까. 궁핍하고 외로운 자신으로부터 환승을 꿈꾸는 인간들은 어디로 환승을 해야 할지, 자문하게 하는 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면서도 이 시는 환승의 지점을 바다로 놓고 있다. 고단한 현실의 퇴근길에서 졸다가 문득 깨어보니 모태 혹 어머니의 자궁인 바다였다. 그 바다에 닿은 후 다시 종점을 다시 시발점으로 돌려놓은 희망의 환승을 보여주고 있다. 존재를 존재 속에서 삶의 깊이를 들여다보고 있는 시인 것이다.

 

 

 3.

 그의 시 전체의 톤과 아우라를 읽기 위해서는 그의 自序를 빼놓을 수 없다. 윌리엄 블레익(William Blake)이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라고 노래했듯이 나는 바로 책의 서두에서 만난 김주명 시인의 自序야 말로 그가 꿈꾸는 현실 너머에 꿈꾸는 이상 세계가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겨우살이 꽃 피었다네

무서리 북풍에도 나 잘 살아왔다고

꽃 피었다네

안부 전하듯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햇살 따라 피는 꽃들

향기가 너무 높아

바람이 먼저 찾는 절정에서

곤줄박이가 물고 간 그대 열매

어찌 살았을까

겨우 살았을까

-김주명 <自序> 전문

 

 인도네시아의 섬 롬복에서 쓴 그의 自序이다. 살아 뛰는 심장을 쏘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다가 방아쇠에서 발 발굽소리를 들었다치자, 이를 두고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그게 시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경험 속에는 이미 발 발굽에서 다시 한 번 땅을 딛고 내달리며 연금된 쇠의 성질을 이용해 총의 방아쇠를 만들었다는 설명이 뒤따르지 않아도 들어있는 것이다. 자칫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지 않았다고 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억지일 것이다. “어찌 살았을까/겨우 살았을까”이 두 행의 마지막 연이 주는 의미가 그렇다. 겨우살이는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혹은 효험을 지닌 성분으로 다 말할 수 있나? 겨우살이는 겨우살이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신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시인은 자신의 현재 삶을 이렇게 전한다. “무서리 북풍에도 나 잘 살아왔다고/꽃 피었다네” 그러면 이 행은 뭔가 “향기가 너무 높아/ 바람이 먼저 찾는 절정에서/ 곤줄박이가 물고 간 그대 열매” 이 부분에서 향기가 너무 높아는 아마도 상징이다. 곤줄박이라는 새 이름을 이야기 하지만 그 새는 매개일 뿐이다. 열매는 그냥 열매가 아니고 “그대”가 있어서 이 시는 의미가 확장되어 독자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일으키게 한다. 그의 시들이 대게 그렇다. 대조 대비로 등장하는 겨울 햇살도 그렇다. 자신의 정신을 물고 떠난 시가 우주의 적막한 곳에서 겨우살이처럼 피어나기를 염원하는 시인의 마음과 이 自序는 무관하지 않다. 그렇게 보면 그는 떠난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중일 거라는 안도감이 든다. 그에게 현재는 언제나 환승 구간일 것이다. 지구의 삶이란 어디론가로부터 떠나와 잠시 머무는 것 아니겠는가. 그가 있는 곳이 어디이든 그는 곤줄박이일 것이고 역할로는 끊임없이 따뜻한 모국어를 퍼 나르면 된다.

 

 4.

 1~3부에 게재된 김주명 시인의 시의 배경은 간혹 과거를 반추하기도 하나 대부분 인도네시아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다고 인도네시아를 알리는 시이기보다는 낯섦에 대한 내면 갈등인지도 모른다. 하여 그에게 적도란 막 가지치기를 끝낸 가지에 후회 한 톨 없이 쏟아지는 빗물이 아닐까. 그 아래 부끄럼 모르는 사랑이 있다면 적도는 사랑의 뜨거움에 비할 그 어떤 것도 아니다. 그의 시<탑돌이>를 보면 온 생을 탑만 도는 보로부두르사원의 말을 시 안으로 가져온다. 그 말은 자신이 건너온 생의 한 구간 박물관에서 잠시 멈추기로 한 약속도 잊고 그는 돌기만 하는 말이다. 말은 시방세계 중심을 업고서 도는 말이다. 내가 먼저 내려야 하겠다는 자비심은 채찍 한 줄로 함께 허공을 맴돌 뿐인 그 말에게 시인은 보시로 건네는 것이 고작 담배 한 개비다. 그런 자신의 허무를 이 시는 나타내려고 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마지막 연 앞이 뭔가 허전하다.  “이별을 기다리며 산다는 것은/ 참 잔인한 형벌이다”라고 노래한 그의 시<인도네시아>도 섬 안에 사는 그에게 이별의 방식은 칸나처럼 붉고 선명하다. 3分 카레 세 봉지와 직화구이 돌김을 시 안에 넣을 수 있는 시인, 우기의 습기로 퉁퉁 불어있는 날 자칫 눈물이 흐를까 봐 스스로를 가두지 않으려는 모진 마음가짐도 그의 시 <급식실로 달리는>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여백이 많은 시집이 좋은 이유를 밝힌다. 섬에서 섬을 만들며 사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고백한다. 그런 시집의 여백은 그에게 그려야 할 검붉은 바다며 구름이며 카페이다. 끊임없는 섬에서의 삶 그 다짐들이 그의 시집 곳곳에는 배어있다. 마치 자신이 만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북방계의 소나무조차도 반가워 한 편의 시가 되고 있다.

 

카플레스 수영장, 반듯하게 꾸며진 정원 한 가운데

소나무가 우뚝 서 있다

이십 년도 넘어 보인다

합장한 듯 서 있는 모습이 측백 같기도

속내를 가만 들여다보면 소나무가 맞다

하여간 나와 같은 북방계

어찌하여 남중국해 건너 이곳 적도 아래

작은 섬에 뿌리 내렸는지

파파야며, 망가, 야자수 널린 열대의 숲에서

속 좁은 이파리 달고 버틴 삶

참 모질다

오늘은 카플레스 소나무에다

연한 내 오줌발이라도 흘리고 싶었지만

울그레 불그레 지켜보는 람부탄 네놈들 때문에

슬쩍 걷어차는 걸로

너와 나의 의식을 치른다네

늘 푸르다는 소나무 초록의 전설

생이 몇 갑절 돌고 돌아

녹색의 땅 이곳에서 시작했을지도

밤새 비가 내리다 말다

아직 우기가 몇 달 더 남았는데

걱정거리 하나 더 늘어가고

-김주명 시 <소나무 이민사移民史> 전문

 

 그는 또한 편도 비행기 표를 끊으면서도 한편의 시를 만들었다. 서로의 긴 외로움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순진한 항거를 들먹이면서도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의 속내를 읽는 장면에서 당신 무청 잘라내는 남다른 솜씨 때문에 낭만적 오천 바다를 등진 사실을 자신과 결부시킴으로 편도여행의 피곤을 잠속으로 밀어 넣는다. 편도 행 비행기 표가 무청으로 환치되어 손안에 쥐어졌으니, 마음속으로 안도가 밀려든 것이다

2부의 <아 코모도>에 실린 시들은 연작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인도네시아의 섬 <롬복>인데 이번에 그가 찾아 나선 곳은 또 다른 섬 <코모도>이다. 섬에 살면서 또 다른 섬인 코모도를 찾아 미지의 신비를 궁금해한다. 그가 얼마나 지적 호기심과 여행을 통한 새로움을 갈망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재 머물고 있는 롬복만으로 인도네시아를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연작시에 나타난 중심 연을 나열해보면 이렇다

 

어제는 부력 잃은 타이어를 만났다

모래 바닥을 파고들다 꼼짝 않는다

무슨 천막농성이라도 하듯

너도 더 파고들 곳이 없을 것이다

-김주명 시 <아!코모도. 1. 라부한 롬복>에서

 

여전히 발이 닿지 않는 사랑이 지나갔다

-김주명 시 <아!코모도. 2. 금줄을 밟다>에서

 

자기 색 덜어주고 속이 움푹 패여 버린 포스터칼라

우물 같다

-김주명 시 <아!코모도. 5. 우물>에서

 

완전한 고독으로 말하자면

여행하지 않는 코모도

그놈이 더 고독할 것이다

-김주명 시 <아!코모도. 6. 길리Gilli>에서

 

미워하는 놈은 다가와서 괴로웠겠고

사랑하는 놈은 떠나가서 슬퍼했겠지

마침내 남은 것이

둥둥 떠 있는 것

마치 자유 하는 것

-김주명 시 <아!코모도. 7. 독백>에서

 

이럴 때 손닿는 곳에 핑킹가위가 있다면

저 구름을 오려 별처럼 걸어둘 수 있을까

엄나무 가시 하나만 있었다면

잉크처럼 번진 구름 콕콕 찍어다

당신 허벅다리 안쪽에 ‘넌, 내꺼’

문신을 새겼을 것이다 이윽고

-김주명 시 <아!코모도. 8. 일식>에서

 

왠지 이상한 장례식이었어

그렇게 소주를 좋아했는데

술 한 잔 올리지도 않았고

기억에 남은 동창들도 별로 오지 않은 걸 보면……

꺼억 꺼억 내가 술 취해 울었던

맞아! 한바탕 잔치 벌였던 거야

-김주명 시 <아!코모도. 10. 숨>에서

 

선실의 환풍기가 밤새 윙윙거린다

징징 우는 것 같다

스위치를 끄는 간단한 처방으로도 재울 수 있겠지만

이번엔 그냥 두기로 했다

너도 밤새 울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김주명 시 <아!코모도. 9.모걸木乙>에서

 

별이 닿지 않는 섬으로 가버린 친구의 일대기가

서럽도록 푸르게 농축되어 전설로 주입될 때

주사 바늘은 늘 제일 아픈 곳을 들춰냈다

-김주명 시 <아!코모도.11. 2부제 수업>에서

 

 하여 그가 머물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그의 어떤 도피처가 아니라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베이스캠프인 것이다. 자신의 내면과 고독함을 끊임없이 추적해서 척살하려는 의지가 있다. 그에게 들린 무기는 바로 모국어이며 슬픔은 슬픔으로 죽이는 법을 연마하고 있다. 그런 그의 시 2부의 시 세계를 응축한 시 한 편이 바로 15번 <달이 멀어진다>이다. 얼마나 극명한가.

 

어머니 임종을 지키는데

갑자기 배가 고팠습니다

그때만큼

내가

나에게 미운 적이 없었습니다

-김주명 시 <아!코모도.15. 달이 멀어진다> 전문

 

 이러한 김주명 시인에게 고국에서 응원을 보태는 한 편의 시가 있다. 여러 말보다 최은주 시인(2011 시와경계 신인상, 양산시인협회, 다울문학회원)이 쓴 시를 한편 보면 김주명 시인의 시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반도로

 디엥 고원 하늘을 선물해준 그는

 시를 쓰며 적도의 그 어디쯤에 산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던

 시인의 눈가에 드리워진 주름이 몇 개 더 늘었을지

 사람 홀리는 적도의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없으나

 그가 모국어로 나열해 놓은 시어들에서는 이따금

 나도 모르게 손을 모으게 된다 

 언젠가 김경주의 여행기를 읽으며 

 사막의 모래알이 입속으로 들어

 머덜머덜 현기증을 앓았던 때 밤마다

 고비의 언덕에서 헐떡였다지, 나는

 

 우기로 접어든 하늘 아래서

 건기의 적도를 날던 그때 그처럼

 여러 번 횡단하다

 적도의 시인에게 들키지나 않을지 

 

 읽어주지도 못할 시를 더듬고 있다

-최은주 시 <적도의 시인>

 

 3부에서도 김주명의 시는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인도네시아를 그려낸다. 새로 사귄 친구들을 그려낸다. 헤리, 수파르, 젠, 디안, 잉카, 아만다, 그리고 낯선 식물들과 곤충들이며 풍광들이 그를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 인도네시아는 언어적 설명으로는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인도네시아로 날아가야 볼 수 있는 인도네시아일 것이다. 시로서 화답하는 최은주 시인도 가보지 않은 인도네시아를 이 한 편의 시를 쓰면서 수없이 그렸을 것이다. 이번 시집이 그에게 있어 소중하고 인도네시아를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소중하듯이 이미 그가 이번에 세상에 내놓는 시집 안에 들어온 인도네시아는 꿈이자 희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끊길 듯 끊이지 않는 수려한 문체의 맛깔스러움이 시를 끌고 나가는 힘이 되고 있으며 사유가 일상에서부터 시작되어 깊어가는 과정을 김주명 시인은 이 첫 시집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던 소년이 중년에 이르러서 삶의 정곡을 찌를 듯 그렇게 말을 아끼는 마무리, 여백과 공간의 미학을 특장으로 하는 특이한 어법이 시집 안에는 고스란히 녹아있다. 절망도 고독도 이미지로 환치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하여 그에게 들어온 어떤 외로움도 다 동적인 행위로 연결시킴으로 해서 아름다워질 수 있으니, 다음에 선 보일 시집이 크게 기대된다.

 

 가자! 섬이 그리워지면 기차가 갈 수 없는 섬이라도 기차를 타고

 

 

 

 

출처 : 대구詩창작원 <형상시문학회>
글쓴이 : 윤배박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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