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복시인 2014. 12. 14. 01:48



여백이 많은 시집



사실 이랬다

바다를 건너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100킬로그램 상자 하나를 채우는 일 

내내 망설였다 

밥 해먹을 냄비 한 두 개쯤 빼고 그 자리

시집을 채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살만 하리라 생각했지 하지만


바닷새는 달랐다

여기서 저기서 물어다 준 시집들

숨구멍이 되고 

섬이 되기도

바다가 되기도 


섬에서 또 섬을 만들며 사는 일

그러다 보니 여백이 많은 시집이 좋다

빈자리 찾아다니며

검게 또는 붉은 바다도 그려놓고

오렌지색으로 흥건히 젖은 구름도

해변에다 카페도 하나 지어볼까?


아직 새떼나 고래들이 떼로 몰려 온 적은 없지만

롬복 커피 볶고 내리기엔 딱 좋은 그런 대나무 카페

바싹 마른 물고기 비늘

쪼개진 그리움으로 날아드는 숭숭한 여백에다

시 한 페이지


그림 한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