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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바라와(Ambarawa), 초록의 파도에 묻힌 무궁화의 연대기

롬복시인 2017. 9. 19. 18:15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문학기행

 

암바라와(Ambarawa), 초록의 파도에 묻힌 무궁화의 연대기

 


 

 

자바섬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스마랑에 모두 모였다. 알록달록 스카프가 서로의 인식표가 되고 간식거리로 정을 나누는 동안 차는 줄곧 암바라와로 향하고 있다. 쭉쭉 내달리는 고속도로지만 중부자와의 2천 미터가 넘는 고원을 넘기에는 모두가 목이 마른 듯, 땅도 풀도 바싹 말라있다. 마치 편치볼을 연상케 하는 이 고원을 지나면 남쪽으로는 수라바야, 동으로는 솔로, 족자카르타로 연결된다고 하니 약육강식의 식민시대에 암바라와를 놓고 벌어진 쟁탈전이 짐작도 될 법 하다. 이윽고 평원으로 들어선 버스는, ! 초록의 파도를 타고 있다.


건기가 서너 달째인 지금도 모내기가 한창이라니! 저 멀리 지평선이 있을 법한 자리에는 머라피의 산맥이 초록으로 검게 울타리를 치고 있다. 연초록이 내내 펼쳐진다.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초록이다. 맑게 웃는다. 하지만 웃지 않는, 아니다. 웃음을 잃어버린 거대한 군막의 요새만이 시간의 장막에 덮여 아직도 경계병의 자세로 꿈쩍없다. 육각의 성냥갑 모양으로 평원에다 벽돌로 지은 저 거대한 인공의 요새는 네덜란드인들이 식민통치시절, 암바라와를 통해 중부자와를 지배하기위해 건설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군의 점령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일본군은 인도네시아 전역에 남아 있던 유럽인들을 이곳 암바라와로 집결시키고, 그들이 지은 거대한 요새를 포로수용소로 개조하여 가두었다. 수용인원이 3만 명을 넘었다 하니, 자신들이 건설한 요새에 스스로 갇히게 되는 그 비통함을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을까? 그랬다. 여기까지는 2차 대전 전후 식민시대의 여느 나라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다. 그저 남의 나라 전쟁사 정도로 묻힐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조선인들이 피우지 못한 무궁화가 거기 있었다.


유럽인들을 수용한 일본군은 이를 지키고 감시할 초병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조선에서 강제로 또는 그럴듯한 꾐으로 군사모집을 하였으며, 3천여 명에 이르는 조선출신 일본군이 동남아시아 전역에 배치되었으며, 이곳 암바라와 수용소에도 7백에서 천여 명 가량 배치되었다고 한다. 또한 일본인 군속을 따라 전개된 조선인 위안부 거처가 요새와 23미터 거리를 두고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이럴 수도 있었던가? 우리 조선인도 전쟁에서 철저한 피해자였건만,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피해자인 그들이 오히려 인본인 가해자의 입장에서 서서 유럽인 포로들을 감시하는 노릇을 했다고 하니, 이는 전쟁이 주는 또 하나의 잔혹사라 하겠다.


1945, 일본은 패전으로 전격 철수하자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어느 누구도 조선인 일분군대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히려 연합군측에서는 조선인 일본군도 일본군으로 간주 해 전범으로 심판하고 처형하였으니, 그 억울함을 또 어찌해야 하나? 일본군의 철수는 신속히 이루어 졌다. 하지만, 남겨진 유럽인 포로와 이를 감당 할 수 없는 무국적자 조선인 군인들, 그리고 돌아갈 갈이 없는 조선인 위안부 여인들, 그들은 저 초록의 바다에 갇혀 서로를 깊게 응시하였을 것이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연합군의 한 축이였던 네덜란드군의 상륙을 거부하고 전쟁에 돌입하였다. 이때 인도네시아의 한국인 독립영웅, 앙칠성부대원의 이야기도 여기서 시작된다. 그들은 이곳 암바라와에 있던 일본군 무기고를 개방하고 인도네시아군인들에게 무기를 전달하였으며, 네덜란드 군인들과 적극적인 전투를 벌였다고 전한다. 이윽고 연합군은 완전 철수하였으며, 인도네시아는 오랜 식민통치를 마감하고 독립을 이루어 냈었다. 하지만 돌아갈 바다를 건너지 못한 이방인 조선인들은 이곳 자바섬에서 긴 생을 마감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반세기가 더 지나 그들의 엷은 자취는 온 자바를 구석구석 골목길 다니 듯 돌며 채록하신 문인협회 한상재고문님의 떨리는 육성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는 지금 초록의 암바라와 평원에 서 있다. 누가 나를 이곳에 세웠는가?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더 이상의 일본군도, 조선인 군인도, 위안부도 없다. 포로가 된 유럽인들도 없다. 남겨진 것이 있다면 초록의 긴 그늘이 그날의 요새를 덮고 있을 뿐, 암바라와 분지에는 끝없이 맑은 물이 솟아난다. 저 물이 암바라와 들녘을 살찌우고 있다. 이 생명의 땅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방인들에게는 솟구쳐 오르는 저 물은 마치 마르지 않는 그들의 눈물처럼 여기지지나 않았을까? 슬픔도 깊어지면 밥이 된다고, 지금 저 풍요의 들판에서 나락을 터는 자바의 아낙네에게 귀띔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글: 김주명(롬복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