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바타비아 선/시집 바타비아선

[스크랩] 파파야를 위한 축원 祝願/김주명

롬복시인 2019. 1. 7. 19:23

파파야를 위한 축원 祝願



김주명



느닷없이 파파야 나무가 쓰러졌다

바람 한 웅큼

단 한 번

날이라도 세운 듯

나무를 부러뜨리고 말았고

그제야 드러내는 나무의 속내를

읽었다


비어 있었다


나이테는 어디다 감추고?

바람이 나무를 만든다 하지 않았던가?*

참으로 야속하다


남국의 바람길 정도는 알만하다고

옮겨 심었는데

저토록 속을 비우며 옹기종기 열매를 달고 있었던 나무가

멀쩡하게 버티는 내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저녁달조차

야속하다


제 몸이 잘렸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꾸역꾸역 흰 수액을 허방에다 뿌리며

땅을 꽉 부여잡은 밑동은

아직 팽팽했고


혈육인 듯 남은 잎으로 주섬주섬

더는 바람 들지 않도록

달그림자 씌워준다


*이태관 시인의「나무」에서


□김주명 시집『바타비아선』에서

출처 : 김성춘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
글쓴이 : 퇴고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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