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끌리는 시와 글 모음

[스크랩] 악어 /고영민

롬복시인 2010. 8. 30. 19:09

악어 /고영민

 

  지하철 문에 한 여자의 가방이 물려 있다 강을 건너다 잡힌 새끼 누 같다 겁에 질린 가방은 필사적으로 뒤척이지만 단단한 하악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더 깊은 질식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언제가 나도 저 강을 건너다 어깨 부위를 물린 적이 있다 깊은 흉터가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저 입은 어미와 새끼를 갈라놓고 동료를 애인을 갈라놓기도 한다 새끼를 따라 시골에서 올라온 한 늙은 어미가 혼자 입안에 갇혀 공포에 가까운 눈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밖에선 새끼가 떠내려가는 제 늙은 어미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 매정한 입은 몇 정거장을 지나쳐도 열리지 않고 숨이 잦아든 여자는 멍하니 제 깊은 상처, 물린 가방을 지켜보고 있다 반대편으론 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닫히는 입을 피해 강으로 뛰어들고 다시 재빨리 뛰어나가고 있다 또 한사람이 센 물살에 떠밀려 팔 한쪽이 물렸다 용케 빼낸다 살아난다 이 乾期의 땅, 유유히 강은 흐른다

 

 

 

고영민 시인의 첫번째 시집..."악어"에서 옮겨 왔습니다...

일전, 두번째 시집"공손한 손"에 수록 되었던.."해감"이란 시를 접하고 찾아보다..

닿게 되었습니다..

 

출처 : 수상가옥(시인 박윤배의 집)
글쓴이 : 김주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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