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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과나무 밭 밑동들 / 황학주

롬복시인 2010. 9. 28. 15:35

 

 

사과나무 밭 밑동들 / 황학주

 

 

부석사 까치가 쪼고 있는
늙은 사과나무 밑동들

 

어쩌면 기다림뿐일 줄 모르는
시간이 꼭꼭 씹어 쌓아둔 시커먼 밑동과 엉덩이를 맞대고
나는 눌러앉아 있었다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닌 연애가 여물었다 벌어지고
점점 말수가 줄다 아예 경청하는 귀만 커다랗게 남겨진 노인일까
베이고 없는 사과나무들
질질거리며 소변보는 마지막 모습만 얼어 있었다
저녁은 그 사이
망한 부석 아랫도리와 바닥 모를 말을 나누며
얼룩얼룩 했다

 

저런, 자필 사인한 이별 같은 노을에
젖어 벌어지는 사과나무 한 그루
털썩 주저앉아
몇 해전 내 몸에 들어오지 않았나 묻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달라붙는
사과나무 밑동 버섯 한 송이
스스로 주저앉을 때까지
부석부석한 겨울저녁
구멍 여럿 난 사람보다 조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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