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끌리는 시와 글 모음
서쪽/이병률
롬복시인
2011. 4. 8. 19:44
서쪽/이병률
집 밖에서
자신에게 편지나 우편물을 보낼 적에
일본에서는 자신의 이름자 뒤에 행(行)이라 쓴다
나 죽기 직전 나에게 편지 쓸 일이 있더라고
내 집 방향에선 등 하나 켜놓지 않을 테니
行이 마땅하다
받게 될 애먼 이 없으니 行이면 충분하다
이 책들을 부쳐야 하나
이 옷가지들을 빨아야 하나
먼 데 먼 길에서
버리고 돌아오는 것이 도리가 아닌 듯하여
주섬주섬 포장 들고 우체국에 들렀을 때
내 이름자 뒤에 무엇이 마땅할까 궁리하다
그 순간 멍하니 서름했던 적 몇 번 있지 않았던가
왼발 오른발 걷는 모습 둘이 모여 行이라는데
반겨줄 이 없어도
팽팽히 나를 떠메고 가야만 하는 길이 行일진대
가닿는 일이 공치는 일이며 속아 바래지는 일일지라도
잔시름 자리에 行자 하나 붙인 채로
저무는 길을 가다 문득
저도 모르는 일을 지어내거나
서족 어디쯤에선가 행불(行不)이 되거나 하는 일
아름답기는 할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