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영재 (운문) 지도 후기
무한한 상상의 그릇, 어떻게 채울 것인가?
박윤배( 시인 . 지도강사)
시를 가르쳐서 될 것인가? 라는 반문도해보지만 중학생인 이들은 그 심성이나 감성이 잘 발달되어있는 시기이므로 시인에 가까운 감수성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일단은 형식의 그릇에 익숙하지 않음에 가르치는 일은 학습자의 특성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지도 방법이 요구되기도 한다. 지도목표에 있어서는 일차적으로 당장에 좋은 시를 만들기 보다는 잘 쓸 수 있는 역량 강화에 그 목적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그들의 눈높이를 정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반적인 그들의 특성은 첫째 그들은 아동과 성인의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아동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며 성인세계의 목소리를 닮아가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둘째 그들은 언어의 선택에는 어눌하고 폭이 좁으나 무한한 상상의 세계는 열려 있다는 점이며 셋째로는 체험의 깊이가 미약하나 관찰력과 집중력이 성인들보다 뛰어나다는 점이다. 물론 구성원 중에 많은 독서와 사유를 통해 성인 못지않은 인식의 깊이를 가진 영재라면 그에 맞는 지도가 별도로 요구되기도 하지만 위의 세 가지 학습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시 지도의 방향을 설정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동심의 바탕위에 시심의 접목
하루 네 시간 씩 이루어지는 영재수업은 두 학기에 걸쳐 18일 정도 실시된다. 하루 네 시간 중 두 시간 정도는 시의 이론으로 지도되며 나머지 두 시간은 실제 창작지도와 첨삭지도로 이루어지는데, 이론 지도는 그간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서 배웠던 시의 이론보다는 깊이 있는 이론으로 교수-학습되어지며 시에 대한 안목을 넓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이에 비해 실기창작 및 첨삭지도는 시의 기교에 대한 전반적인 지도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처음 문예창작교실 문을 열고 영재원에 들어온 학생들의 시를 보면 전반적으로 안목과 기교가 없다. 그냥 자신의 감정을 나열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그 예의 작품을 한편 보면
한 걸음
두 걸음
늘 정처 없이 어디론가 향하는 발
몇 걸음 걸어
동무 찾아
우리학교 가는 거니?
또다시 몇 걸음 걸어
이젠 좀 쉬러
우리집 가는 거니?
아하
음악에 맞춰
신나게 걷는걸 보니
“그 사람” 보러
--정다운(『발』전문 )
위 시처럼 동심이며 별다른 시의 구조나 고민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에둘러 표현하거나 객관적인 상관물을 끌어들인 흔적이 별로 없이 맑고 투명하다. 간혹 이러한 동심의 표현을 좋게 생각하는 혹자도 있지만 시 창작 수업을 통해 좀 더 고민해보는 “발” 혹은 발이라는 소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심의 지도가 필요하다. “시심”이라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관찰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모든 학습의 기본이 관찰이듯, 시 쓰기 또한 주변사물들과 정황에 대한 관찰과 무관하지 않다. 대상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를 학습자에게 요구해야 한다. “좀 더 생각해봐!” 라고 끊임없이 주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듯 좀 더 깊이 들여다본 다른 학생의 시 한편을 보자
무심코 지나치던 발의 물집과 상처들
반창고 하나 탁! 붙여놓고 잊고 있었는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신발이 슬쩍 건드린다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질렀는데 글쎄 모른 척 시침 뚝
신경질 통에 집에 가서 탁탁 내리쳤더니
양말을 벗어보니 물집은 다 터져있다
어쩌면 내 신발이 내발을 보듬고 있진 않았을까
그래서 늘 무심코 지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빗물 새어드는 낡은 신발이 마치
든든한 아버지란 상표의 신발 같다
---박규현(『신발』전문 )
발이 주제는 아니지만 발을 둘러싼 신발과 아버지가 사준 신발 유명메이커의 운동화가 아닌 신발을 실제로 오래 신고 다니는, 소박한 농촌학생 박규현은 달성문예영재원에서 시를 제법 잘 쓰고, 지도한 결과가 매우 좋은 학생이다. 좀 지루하게 산문식으로 문장을 나열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세밀한 들여다보기가 시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마지막 두 행의 비유는 그의 다른
시 에서도 보여 지는 아버지로 보아 집을 자주 집을 비우는, 노동의 현장으로 떠난 보고 싶은 아버지이며 그래도 든든한 아버지이며, 그런 신발은 아버지가 건네준 한 때 새 것이어서 충분한 기쁨이 되었던 신발인 것이다. 이렇듯 시심이란 막연한 심상의 표현이 아닌 관찰과 체험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이므로 “좀 더 생각해봐”의 결과물인 것이다.
2. 언어와 상상력의 폭을 넓히는 훈련
시의 언어는 시를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이다. 그러나 시 쓰기에 접근하는 학생들이 가끔은 시어는 어떤 시어를 써야 되느냐는 질문을 던져온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운 것인지는 모르겠으니, 특정한 언어만을 써야 시가 되는 줄 알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시어란 학생들에겐 고운 말로 인식 되어진 언어들인데 그 벽을 깨도록 해주어야 한다. 단지 몇 가지 피해야 할 언어의 문제는 단순히 내용을 꾸미는 장식적인 수사를 피할 것, 아는 체 함을 드러내는 철학적인 수사를 피할 것, 상투적인 표현과 관습적인 수사를 피할 것. 정도만 첨삭 지도를 통해 지적되면 된다. 지나친 관념어를 구체적인 언어로 바꿔 표현 하는 정도로 지도해야 한다. 너무 많은 언어에 대한 지적은 오히려 상상력의 폭을 좁게 할 수 있으므로 혹은 창작에 대한 제제로 받아들여져 학생들은 글쓰기의 흥미를 잃게 될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당장은 시가 되지는 않겠지만 좀 더 멀리 보면 시 쓰기는 결국 좋은 상상력을 갖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이런 상상력의 훈련 중 두 가지를 열거해보면 하나는 연상을 통해서 하나의 주제에 대한 여러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떠올려보는 방법과 서로 모양과 색이 다른 사물을 낮설음으로 하나의 문장 안에서 만나게 하는 방법을 들 수 있다. 그 상상력 기르기의 예를 들어보면
선의 느낌으로 만나는 이미지를 연상해 노트에 적어 보세요?
(학생들이 찾아 낸 것들 )
비/빨래줄/ 밭고랑/ 라면가닥/운동화끈/ 강물 / 전선/ 탯줄/ 핏줄/ 등등
등등의 것들과 시각뿐만 아닌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의 한 부분을 두고 연상되어지는 시적 대상을 찾는 훈련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말랑한 느낌으로 만나는 이미지를 연상해 노트에 적어보세요? 등등의 오감을 깨우는 연상법과 함께 시적 대상의 주변 연상이 결국은 한편의 시를 쓰는데 매우 기본이며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이다,
예) 할머니에 대한 연상
주름살/ 흰머리/ 고무신/ 비녀/ 굴뚝연기/ 지팡이 / 굽은 허리 / 홍시 / 틀니 / 등등
두 개의 낮선 이미지로 문장 만들기
허수아비-십자가
고금도치 - 하늘
갈대 - 커튼
등 막연한 대상을 문장으로 만들어 보는 훈련의 예를 보면 다양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문장이 나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예)허수아비를 삼킨 저녁 하늘이 마을에 십자가를 내려놓았다
고슴도치가 기어가고난 뒤 붉어지는 하늘
갈대의 커튼 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등등의 얼마든지 생경한 이미지들을 충돌시켜 상상의 형상화를 가져올 수 할 수 있는 시의 지도가 보다 멀리 보았을 때 좋은 시를 쓸 자질을 키우는 한 가지 훈련인 셈이다.
새들을 쫒아내는 허수아비는/십자가가 부럽다
커튼은 바람 앞에서 /갈대처럼 흔들린다 --이다솜
바닥에 박혀 내려오지도 못하는 십자가 /저 편 허수아비를 웃게 한다
갈등으로 몸을 키운 갈대는 흔들리면서 자란다--정다운
물위의 날들, 갈대가 몸 흔들어 커튼처럼 춤추는 물방개--김슬기
식으로 다양한 상상의 표현이 생겨나는 것이 또한 이미지 훈련의 한 결과 인 셈이다
3. 체험 및 관찰로 사물 들여다보기 -정황묘사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묘사이다. 미술에서 대상을 그려내기 위해 먼저 소묘를 하듯 글쓰기 혹은 시 쓰기 또한 그 묘사의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설명이나 논증이 아닌 이미지의 묘사가 결국 시 쓰기인데 소설이나 산문이 서사인데 비해 시의 묘사는 암시성을 띠어야 한다. 특히나 문예창작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시에 있어 객관적인 묘사와 주관적인 묘사를 사용하여 적절하게 어떤 정황을 묘사하게 해도 저절로 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여기에 직관이나 상징의 장치가 가미된다면, 절제를 통한 장식적인 수사를 제거한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런 묘사력을 기르는 것이 주된 시창작의 기본인 것이다. 이에 정황묘사에 의해 이루어진 학생작품을 눈 여겨 보면
한숨 쉬고 있는 아궁이 옆으로
머리가 없는 화장실이 튼 입을 벌리고 있다.
몇 달 동안 물 한 방울 닿지 않은 듯
그 입속에선 군내가 나고
그 군내가 좋은 친구들은 그 옆을 서성거리고 있다.
아직 덜 익은 계집애가 화장실을 훔쳐보고 있다.
그 근처로 다가갔다 끝내 돌아오는 것만 열댓 번째
지나가는 누렁이가 비웃는다.
--김슬기(『시골화장실』전문 )
파랗게 칠한 페인트가 벗겨져
싯누렇게 녹슬어있는 양철 문 열면
눅눅한 향이 코를 침범한다.
덕지덕지 개어 바른 시멘트가 습기 머금고
퀴퀴한 냄새를 풍긴다.
벽에 매달린 거미줄은 거미가 집짓다
그네라도 뛰었는지 풀려버린 체인처럼
아래로 축 처져있다.
위˜잉 방금 부화한 벌레가 날아다닌다.
파리채로 이리저리 쫓는 것도 아닌데
헐레벌떡 바깥으로 향한다.
빛을 받아 초록으로 반짝이는 날개
안과 바깥이 뭔가 다른 듯
기묘한 듯 갸우뚱 고개 몇 번 젖더니
부지런히 날개를 흔든다.
냄새의 공간 밖으로
--조은경(『변소』 전문 )
화장실인 한 풍경을 이렇듯 정황묘사를 하고 있다. 화장실 뿐 아니라, 버스 정류장/도살장/야산/학교 앞 식당/ 기차 안 / 이렇듯 학생들과 무관하지 않은 삶의 부스러기들의 일부를 정황으로 던져주고 묘사하게 하는 훈련 또한 매우 중요한 지도 방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창작지도 방법은 다소 세밀한 감각과 그리고 지도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을 때 성과가 더해지며 시적 상상력을 지도하는 사람이 겸비하고 학습자에게 즉흥적으로도 좋은 이미지의 문장을 보여주어야 그 전문성에 의해 학생들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 첨삭지도는 문장의 도치를 통한 효과, 조사의 적절성, 시의 구조에 있어 내용비중의 안배, 제목의 적절성, 첫 행과 마지막 행의 여운, 행과 연의 여운 혹은 여백이 잘되어있는가를 고려하여 지도되어야 한다. 아무튼 영재원에 문예 특히 시를 배우겠다고 온 학생들은 모두 열려있다. 열려있는 그 무한한 상상력의 그릇에 무엇을 채워야할지 어떻게 채워줘야 할지는 고민할수록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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