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 끌리는 시와 글 모음

[스크랩] 권오준씨/정영

by 롬복시인 2010. 8. 30.

권오준씨/정영



 나는 권오준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오빠도 사촌들도 권오준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햇빛이 쏟아질 때
 오빠와 사촌들이 거리를 활보할 때
 그들이 손 붙잡고 인사할 때
 권오준씨가 나를 내놓았다
 남미에 처음 갔을 때
 당신이었냐고 권오준씨와 인사를 나누었고
 유럽에 처음 갔을 때
 따뜻한 테라스에서 권오준씨와 점심을 먹었다
 밤거리에서 내게 빗물을 튀기고 간 것도 권오준씨였다
 어머니도 권오준씨를 기억한다고 했다
 우리집 전기배선을 한 권오준씨는 손등이 검었다
 불빛 아래 권오준씨들이 모여 권오준씨를 엿듣기도 했다
 내 적수, 권오준씨들은 길을 떠났다
 오빠는 권오준씨를 아버지라고 불렀고
 형이라고 불렀고 그 자식이라고 불렀고
 내 사랑 권오준씨를 바람이라고 불렀다

 알몸의 나를 거리에 내팽개친 권오준씨
 권오준씨! 하고 불렀을 때
 저 저 수많은 권오준씨들

 

 

정영시집 "평일의 고해" 창비시선 2006

 

출처 : 수상가옥(시인 박윤배의 집)
글쓴이 : 김주명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