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의 선택
유하
우리가 우리 기관의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어내는 데 그토록 열을 올렸던 것은 우리 환경이 우리에게 그다지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일 수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한때 인간들과 함께 지상을 거닐며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이던 돌고래들. 어느 날 그들은 육지에서의 삶을 그냥 놔둔 채 다시 바다로 되돌아갔다.
언젠가 하늘을 날아가는 물떼새를 바라보다 땅을 딛고 있는 내 두 발이 슬퍼진 적이 있다. 날지 못하는 포유류들의 슬픔에게 물어보라. 돌고래들의 선택은 최선이었다 그들은 날개 없이 날 수 있는 세상으로 가기 위하여 돌 같은 단호함으로 이 땅을 버린 것이다.
바다에는 돌고래들의 푸른 언어가 있다. 돌고래들은 미세한 물결의 파장을 일으켜 편지를 쓴다. 바다의 정어리 떼만큼 풍부한 뉘앙스의 물결 언어를 갖기 위해 돌고래 시인은 바다로 갔다.
날개 없이 날 수 있는 세상과 펜의 언어 밖에서 쓰여지는 시. 나는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슈퍼마켓에 간다 그곳엔 죽은 정어리 떼의 통조림들이 진열돼 있다 돌고래는 그 서글서글한 눈으로 내게 속삭인다 도구를 가진 자들의 무덤이 그 안에 있다고
조련사는 언제나 자기 손의 높이만큼 뛰어오르는 돌고래의 묘기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그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돌고래는 이미 수만 년 전에 집과 옷과 먹이와 상상력의 슈퍼마켓인 바다의 행복에 대해 깊이 사색했던 것이다
시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1999 열림원
|
'마음 끌리는 시와 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이윤학 (0) | 2011.04.08 |
---|---|
서쪽/이병률 (0) | 2011.04.08 |
[스크랩] 송충이도 못 된 사내/김중식 (0) | 2011.03.10 |
[스크랩] 등(等) / 장이엽 (0) | 2011.02.21 |
[스크랩] 그의 심장은 목덜미 어디쯤에 있다 / 권혁웅 (0) | 2011.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