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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끌리는 시와 글 모음

[스크랩] 돌고래의 선택 / 유하

by 롬복시인 2011. 3. 15.

 

돌고래의 선택

 

유하

 

우리가 우리 기관의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어내는 데 그토록 열을 올렸던 것은 우리 환경이 우리에게

그다지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일 수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한때 인간들과 함께 지상을 거닐며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이던 돌고래들.

어느 날 그들은 육지에서의 삶을 그냥 놔둔 채

다시 바다로 되돌아갔다.

 

언젠가 하늘을 날아가는 물떼새를 바라보다

땅을 딛고 있는 내 두 발이 슬퍼진 적이 있다.

날지 못하는 포유류들의 슬픔에게

물어보라. 돌고래들의 선택은 최선이었다

그들은 날개 없이 날 수 있는 세상으로 가기 위하여

돌 같은 단호함으로 이 땅을 버린 것이다.

 

바다에는 돌고래들의 푸른 언어가 있다.

돌고래들은 미세한 물결의 파장을 일으켜

편지를 쓴다. 바다의 정어리 떼만큼

풍부한 뉘앙스의 물결 언어를 갖기 위해

돌고래 시인은 바다로 갔다.

 

날개 없이 날 수 있는 세상과

펜의 언어 밖에서 쓰여지는 시.

나는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슈퍼마켓에 간다

그곳엔 죽은 정어리 떼의 통조림들이 진열돼 있다

돌고래는 그 서글서글한 눈으로 내게 속삭인다

도구를 가진 자들의 무덤이 그 안에 있다고

 

조련사는 언제나 자기 손의 높이만큼 뛰어오르는

돌고래의 묘기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그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돌고래는 이미 수만 년 전에

집과 옷과 먹이와 상상력의 슈퍼마켓인

바다의 행복에 대해 깊이 사색했던 것이다

 

 

 

시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1999 열림원

 

 

출처 : 대구 詩창작원 <수상가옥>(시인 박윤배의 집)
글쓴이 : 김상무(主明)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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