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박이달선생님
월간 대구문화 2007년 10월에서 가져왔습니다.
익명 속에 담겨 있는 진정성
- 오동나무 책함
흔히 사람을 나눌 때‘된 사람’, ‘난 사람’,‘든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된 사람’은 무릇 앞자리에 놓여, 진정한 삶의 길이 무
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천민자본주의가 들끓는 작금엔 어떠한가요? 된 사람보다는 난 사람, 든 사람에게만 찬탄이 쏟아집니다. 된 사람은 오히려 세상살이가 고단하고 적응력이 상실된 사람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이따금씩 어르신을 뵈러 세거지에 들리는데 지난 여름엔 탁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르신의 조부이신 수봉壽峯문영박(1880~1930) 선생을 기리는 송덕비의 탁본이었습니다. 수봉 선생의 학문과 덕행은 두루 놀라웠으며 인흥(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인 인흥마을)의 중심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사후에 상해 시정부로부터 조문을 보내온 사실만 보더라도 그분의 뛰어난 행적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인흥을 드나들던 행객들이 우러러‘참으로 인의仁義를 행한 만권당 주인(萬卷堂主人)’이라는 송덕비를 건사했다는군요.
以義謀利者非眞義 의로써 이로움을 도모하는 것은 참된 의가 아니며
以仁要譽者非眞仁 인으로써 명예를 바라는 것은 참된 인이 아니네.
不謀不要而爲仁義 꾀하지 않고 바라지 않으나 어질고 의로우니
是萬卷堂主人耶 이분이 만권당의 주인이로다
庚午九月行客等立경오 구월 행객 등이 세우다
나라 곳곳에 송덕비야 더러 남아 있다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비碑를 세운 이가‘行客等’이라는데 있습니다.
비碑도 수수하기 그지 없습니다. 익명 속에 담겨 있는 진정성이 명주실 같이 따뜻하고 부드럽게 퍼져 나갑니다. 우리를 사로잡
은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병석에 누워있던 수봉 선생은 그 사실을 알고 즉시 철거케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碑
는 세워지지 않고 지금도 광거당 누마루 밑에 그냥 누워 있습니다.
진정 위대한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수봉 선생의 일화가 가슴을 적시고 있습
니다.
글|손영학 대구보건대 인당박물관 큐레이터
eyes46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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