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흥마을이야기

[스크랩] 남평문씨 세거지 수봉정사의 白眉

by 롬복시인 2008. 4. 28.

    수봉정사 舊 편액   위창 오세창書  (1864~1953)

 

    수봉정사 대문채

 

    수봉정사 대문 ↕

    대문 빗장둔테  거북이 등의 坤 + 乾 ↕

 

   수백당  우당 유창환  (愚堂 兪昌煥) 1870~1935. 문인. 서예가. 호:우당,六一居師. 자:지백,준백. 본관:기계. 초명:명환.

 

    수봉정사

     수봉정사 주련    석산 김흡   대구광역시 문화관광 해설사 김주명님의 도움으로 서필인을 확인

               元公肇始斯仁著(원공조시사인저) 원공(수봉)께서 그 인을 펴내기 시작하여, 
               亨道爲通庶類蕃(형도위통서류번) 도를 형통하여 널리 퍼뜨리니 여러 무리가 번성하게 되었으며,
               物興俱生皆有得(물흥구생개유득) (이로써) 만물을 일으켜 두루 생명을 갖추어 모두가 만족하더라.
               德雖至大不踰閒(덕수지대불유한) 비록 덕은 제일로 큰 것이라 하나 (선비의) 그 한가로움을 이기지는 못하더라.
 

    수봉정사 누마루

 

    수봉정사  석가산

 

    노송 아래에 자리한 음각의 거북이

 

    이광원 석주

 

     履淸閣  문징명書 

    文徵明 1470~1559  호: 형산(衡山). 본명:벽(璧).  자:징명(徵明),징중(徵仲).  중국 명(明). 그림, 서예, 시     ↕

    思白樓

 

    快活  노완 김정희 書     추사 김정희 (1786~1856)   

 

    敬遺堂  위창 오세창(1864~1953)

 

    수봉정사 누마루 뒤편 판문.  광거당으로 오갈때 사용하던 문으로!!!

 

    화대 담장에 이어진 굴뚝

 

    인수문고 출입문   편액 효남 박병규書

 

    居敬書舍  ↕

    혜사 노재봉(蕙史 盧在鳳, 1936.2.8 ~   )書

 

     仁壽文庫   효남 박병규(曉楠 朴秉圭)西    1925.03.30~1994.09.13

 

 수봉정사 남평문씨 세거지〔南平文氏  世居地〕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 401-2
고려말 문익점의 18대손인 문경호가 집을 짓고 그 후손들이 집을 지으면서 집성촌이 되었다.
인흥마을은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이 오어사에서  이곳에 와 (1264년)

중창하여 인흥사라하고 11년간 주석한 이곳  인흥사지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 후손 문영박(1880~1930)의 아들들이 분가해 한 동네를 이루면서 아홉 살림집과

두 재실(수봉정사, 광거당)이 들어섰다. 

문영박.   호:수봉(壽峰),수백당(守白堂), 자:장지(章之).


수봉정사는 1936년에 문영박의 학문을 이어받고, 후손들의 교육을 위하여 건립한 서당이다.
정면6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으로, 5칸은 방을, 앞의 6칸은 마루를, 1칸은 누마루를 만들었다.

원주는 궁궐과 관청,사찰 건물에 사용하였는데 수봉정사는 7개의 굵직한 원주를 세웠다.

 

마당한쪽에 석가산을 쌓고 정원을 꾸며 괴석과 세 그루의 소나무와 모과나무, 배롱나무 등을,

담장 밑에는 꽃단(花臺)을 꾸미고, 매화나무 단풍나무 앵두나무를 심었다.

 

이광원(彛光園)이란 언제나 떳떳이 변하지 않고 빛나는 정원이란 뜻이며,

귀석(龜石)은 무병장수와 화재예방등 제액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소슬대문 빗장둔테에도 곤.건으로 木거북이 한쌍으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듯하다.

수봉정사. 대문행랑채.인수문고.거경서사. 살림채 등으로 구성되었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山寺로의 여행
글쓴이 : 신기루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