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과늑대/이현승
도망을 이해하려면 말야 아이스크림을 봐 표정을 바꾸는 변검술사의 손놀림처럼 재빠르게, 혹은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있지 아이스크림이 녹지 아이스크림은 포효하고 아이스크림은 분노하고 아이스크림은 자살 협박을 하고 아이스크림은 녹아내려
아이스크림은 도망을 이해할 수 있지 동물원을 탈주한 늑대처럼 아이스크림은 도주하지 아이스크림은 사라지지 가령, 날렵한 혓바닥은 흔적을 지우면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꼬리 같아 도망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늑대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눈을 밝히겠지 늑대들은 새빨간 혓바닥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처럼 아이스크림은 녹아내리지
잽싼 손놀림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완전히 투명에 가까워질 수 있지 잠시 흔들렸다가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오는 물주름 어느 날 위치가 바뀌어 있는 책상 위의 물건들처럼 혹은 아이스크림처럼, 또 늑대처럼 나는 사라지지
시집『아이스크림과늑대』랜덤하우스2007
|
출처 : 수상가옥(시인 박윤배의 집)
글쓴이 : 김주명 원글보기
메모 :
'마음 끌리는 시와 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은하수역, 저쪽-황학주 (0) | 2010.09.03 |
---|---|
[스크랩]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류근 (0) | 2010.08.30 |
[스크랩] 거울 속의 벽화/류인서 (0) | 2010.08.30 |
[스크랩] 악어 /고영민 (0) | 2010.08.30 |
[스크랩]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 신용목 (0) | 2010.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