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孝心과 佛心의 化身 갓바위 부처님
(의현대사 조성설을 주제로 한 갓바위 아래 법당의 벽화)
때는 지금으로부터 1400여 년 전..
신라 제26대 진평왕 11년(589)에서 제27대 선덕여왕 7년(638)때의 일이다.
신라 삼산오악(三山五嶽)사상의 대사삼산(大祀三山), 중사오악(中祀五嶽) 중
신라오악의 중악(中嶽)에 해당하는
팔공산 동쪽 능선 관봉(冠峰) 아래 마을의 한 청년에 얽힌 이야기다.
형구라는 청년은 효심이 지극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미령이라는 처녀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형구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미령과의 사랑을 포기하고 만다.
어머니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가던 어느 날..
형구의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이르기를..
‘500년 된 약초가 있는데 그 약초를 구해다 약으로 쓰면
어머니의 병은 씻은 듯 나을 것이다‘
형구는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관세음보살이 말한 그 약초를 구해 집으로 돌아오지만
안타깝게도 형구의 어머니는 이미 죽음을 맞이한다.
형구는 어머니의 시묘살이 3년을 마친 후,,
마을사람과 미령의 위로도 멀리한 채
매일 술만 마시며 폐인이 되어간다.
마을사람들은 평소 성실하고 효심이 지극했던
옛날의 형구를 생각하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그만 정신을 차리라고 타이른다.
이때 그 마을을 지나던 원광대사는 마을사람들로부터
형구의 사연을 전해 듣고 형구에게 부처님께 귀의하기를 권한다.
그로부터 1년 후,,
형구는 원광대사를 만나기 위해 황룡사를 찾게 되고
원광대사를 스승으로 하여 형구라는 세속의 이름을 버리고
‘의현’스님으로 새로운 출가자의 길을 걷게 된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스승인 원광대사는 형구(의현스님)에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천도를 위해
어머니가 묻혀계신 곳인 팔공산 관봉 큰 바위가 있는 곳에
‘석불’을 조성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로부터 또 다시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팔공산 관봉 정상의 큰 바위가 의현대사에 의해
‘石佛’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그때 기이한 일이 있었으니
의현스님이 석불을 조성하는 동안 밤낮으로
‘두 마리의 학’
이 나타나 먹을 것을 물어다주기도 하고
추운 겨울 밤에는 날개로 감싸주고
상처가 나거나 병이 들면 약초를 물어다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조성과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이 석불에 혼을 불어 넣는 점안(點眼)작업만 남기게 되었다..
점안이란 탱화작업에서도 마찬가지 듯
부처님의 형상에 완성한 뒤
마지막으로 눈을 그려넣어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말한다.
의현스님은 점안 회향법회에 스승인 원광대사를 모시려고 했으나,,
때마침 원광대사의 입적소식을 듣게 된다.
의현스님은 점안 회향법회를 뒤로 미루어 두고
스승인 원광대사의 다비식을 다 치룬 뒤,,
다시 관봉 석불로 돌아온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석불 주위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어야 할
자신의 작업도구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지고
석불 주위가 너무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들어 석불을 바라본 의현스님은 또 다시 두 번 놀라게 된다..
스승의 입적으로 아직 새겨넣지 못했던 석불의 눈동자가
빛을 발하며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일은 무슨 연유인지
석불의 머리 위에 거대한 판석이 얹혀져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갓을 쓰고 있는 모습이였다..
갓을 쓴 石佛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의현스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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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글은 지난 2006년 공연되었던
‘뮤지컬 갓바위’의 줄거리를 제가 약간 수정,편집해서 엮어본 것입니다..
현재 갓바위부처님의 조성유래로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불가에서 많이 발견되어지는 ‘효심+불심’을 모티브로하는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효심+불심’
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의 조성자로 알려진
김대성(金大城)에 얽힌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삼국유사 ‘대성효이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에 전해지는 바와 같이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세웠다는 설이 바로 그것이죠..
여하튼,,
갓바위부처님의 조성유래에 대해
지금의 세상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638년(선덕여왕7) 의현대사 조성설’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638년 의현대사 조성설’에 대해 조심스런 접근을 요구하고 있답니다..
그 이유를 잠시 살펴보면
1. ‘638년 의현대사 조성설’을 언급하고 있다는 그 기록물은
예전 선본사 주지였던 도근스님이 선본사 불상 점안을 할 때
불경과 함께 ‘불상복장유물’로 넣어버려
현재 그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며
2. 갓바위 부처님의 조성기법은 8-9c 무렵에 유행했던 기법으로
사찰에서 주장하는 638년 즉 7c 조성설과 비교를 해보면
무려 200여년이라는 시차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3. 앞서 언급해드린 설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의현대사가 원광대사의 다비식을 마치고
다시 석불 작업장으로 돌아왔을 때
‘눈동자의 완성’과 함께 ‘머리에 거대한 판석’
즉 갓이 씌여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보살상을 제외한 불상의 경우
이 처럼 모자(또는 갓)를 쓰고 있는 형식은
거의 고려시대 이후부터 유행을 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갓바위 부처님의 몸체와 머리의 갓은
그 성분이 서로 다른 암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석등,석탑 등의 부재를 판석형태로 다듬어
이미 조성된 불상에 얹힌 것이라 추정을 합니다.
다시말해
불상조성과는 전혀 다른 시기에
갓이 올려 진 것으로 본다는 점이지요..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판석은 고려시대)
서기 2009년 21세기 첨단정보통신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입니다..
서양의 물질, 과학만능주의에서
서서히 동양의 정신철학세계로
주 관심사가 옮겨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서양을 이해하기위해서는 ‘그리스로마신화’와 ‘성경’을
동양을 이해하기위해서는 ‘논어’와 ‘삼국지’를 읽어야 한다죠..
지금껏 읽혀지고 삶 속에 어떠한 형태로든 녹아 있는
동서양의 그 많은 신화와 고전들...
과학이란 잣대로 해석이 가능할까요??
아마 ‘믿음’일겁니다..
어리석은 믿음이 될지,,현명한 믿음이 될는지
저로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만
무엇인가에 위로를 받고 싶어 하고 의지처로 삼고픈
인간 본성의 투영체가 아닐까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곰’ 그리고 ‘마’늘과 ‘파’..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코웃음을 칠법한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
분명 사실은 아닐 것 같은 이 이야기가
사실 이상의 믿음을 지닌 체
5000년 역사를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이 놀라운 사실..
갓바위 부처님의 조성유래로서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638년(선덕여왕7)의현대사 조성설’
학계에서 주장하는 기록의 존재여부, 불상의 조성기법 등은
이미 우리들의 정서에 깊은 믿음으로 자리잡은
‘638년(선덕여왕7)의현대사 조성설’을 밀쳐내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학계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자료가 발견된다면..
중국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해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우리의 기록문화...
통일신라, 고려,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에 이르는
1000여년이 넘는 세월을 기록한자 남기지 않은 체
안개 속 베일에 싸여있는 갓바위 부처님...
갓바위 부처님의 비밀은 현재도 진행중입니다...
오늘도 갓바위 정상에는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쬔다..
부처님 머리에 갓을 씌여 햇볕과 비를 막아 준
통일신라때인지,,고려때인지
하여간
그때 그분의 따스한 마음이 정겹게 느껴진다..
09년8월23일
갓바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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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원광대사(555-638)는 잘 아시죠??
‘삼국사기 권45 귀산 열전에 언급되기를
진평왕 24년(602)에 백제와의 전투에서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귀산과 추항이라는 두 젊은이가 전쟁에 참여하기 전
중국에서 돌아와 가실사(加悉寺)에 머물고 있던
원광대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니
원광대사는 그 유명한 세속오계를 전했다..‘
좋은 인연 지으세요..
송은석 拜
갓바위 바로 아래 동자굴 옆에 새롭게 불사한 법당입니다..
이 법당 좌,우,뒤 삼면에는 심우도,팔상도가 아닌
의현대사의 갓바위 부처님 조성설화를
몇줄의 글과벽화로 그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가보십시오..
법당을 마주보고 섰을 때 우측과 뒤의 벽화는 거의 볼 수가 없답니다..
2-3층 높이에 난간도 없는 탓에 어지간한 배짱 가지고는
벽에 딱 붙은 채 법당 뒤로 한바퀴 돌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편안한 상태에서 볼 수 있는 벽화가
바로 사진 속 벽면의 벽화인데...
쯧쯧쯧...
한번 보세요...
자판기로 벽화 두 점은 완벽하게 가려놓았고..
그나마 한점 남은 벽화도
무슨 철천지 원수가 있는지..
현수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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