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팔공산, 갓바위에서

갓바위를 오르며....

by 롬복시인 2011. 3. 27.

갓바위, 길, 꽃비

 

 

며칠 째 날이 흐렸다. 나만이라도 지루한 장마의 터널을 빠져 나와야겠다 싶어 경산시 와촌면 선본사엘 가기로 한다. 갓바위로 방향을 잡았다. 정성껏 기원하면 소원 하나는 꼭 들어 준다는 갓바위 부처님,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은 꼼지락 꼼지락 했다.

선본사(禪本寺), 표지판이 자주 나타났다 사라진다. 언뜻 보아도 선(禪)의 근본 도량이라는 뜻 같은데, 앞만 보고 살아 온 터라 선(禪) 깊은 뜻을 어찌 가늠이라도 할 수 있을까? 아마 최근에 읽은 시인 송재학도 나와 같은 물음을 가졌었나 보다.

 

“(전략) 몇 년 후 봄의 적멸보궁 앞 용맹 정진하는 작은 꽃무리를 만났습니다 각과 숨을 깍은 제비꽃은 차마 햇빛을 떠받치지 못하지만 꽃 울타리 안에 고이는 말씀을 담으니 그게 죄다 도로 제비꽃입니다.

꽃들의 떨림을 다 합치면 적멸입니다 적멸을 다 합치면 꽃이기도 하나요

부처가 없다는 적멸은 때로 무엇이나 부처로 만드는가 봅니다 혹 처음부터 당신이 부처였던가요 누구나 적멸로부터 시작했다는 말씀의 결가부좌 거기 있습니다.”

송재학詩 「말씀」 중에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갓바위 부처님은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수제자인 의현대사(義玄大師)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638년(선덕왕 7)에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불상의 학술상 정식 명칭이 최근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慶山 八公山 冠峰 石造如來坐像)’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갓바위 오르는 길 내내 ‘약사여래불’을 외고 있으며 그리 알고 있다. 물론 미륵불, 아미타불 등 이론(異論)이 있지만 중생의 아픔을 가장 잘 치유하는 약병을 든 부처님을 중생은 가장 필요해서 그렇게 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산자락 선본사 주차장에서 시작된 길이 산문을 넘어서니 잔뜩 흐렸던 하늘이 끝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세로화우(細路花雨)라 했던가! 마음 가늘어 지는 길 위로 내리는 비, 꽃비! 산중(山中)은 일제히 소리잔치였다.

 

굴참에서 오동으로 건너뛰는 청솔모, 한 톨 흘려보내지 못하던 낮은 풀들도 이제 가세하려 들었다. 구구 날개 젖은 산까치는 혼비백산하고 전에 없던 폭포도 생겨 이루는 장엄(莊嚴)이여! 지난 밤 꿈에서 기다리겠다던 소리 박새쯤은 약속의 행간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이 많은 소리를 구름이 감추고 있었다니! 그 어떤 천상의 악사들이 이보다 더한 소리공양을 드릴 수 있을까?

두 다리는 소리를 따라가고 가슴은 조금씩 숨이 차올랐다. 결 따라 오르는 길에 층층으로 지켜줄 난간들이 손을 내밀었다. 마주잡기에도 숨 가쁘다. 발 디딜 때 마다 마음 한 칸씩 비우는데도 이내 차오르는 것이 공양미 한 됫박 마음인가?

 

산신각과 마주한 공양간에 이르니, 비는 그치고 운무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나를 따라 올라 오라는 듯 가파른 계단들이 하나 둘 씩 제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숨 고르며 기도하는 사람들 주위를 서성였다. 공양간의 늘어선 줄이 꿈틀 거리는 창자처럼 좁은 경내를 감아 돈다. 오늘이 초하루였던 것을 그때야 나는 알아챘다.

 

공양간으로 내려앉는 갓바위 비둘기 잿빛이 유난히 붉다. 혼인색일까? 산신각 공양미에 입질하기 시작한다. 어쩌나 이 일을? 산중(山中) 진수성찬(珍羞盛饌), 날지 못할 정도로 먹으면 어쩌나!

 

응징에 나선, 만만치 않은 공양간 보살이 작대기 하나로 허공을 겨냥하자, 처마로 나무 위로 두어 칸씩 건너뛰는 비둘기는 엎드려 소원하는 중생들 위로 찔끔 똥 한번 흘리더니 갓바위 부처님에게로 훌쩍 가버린다. 나도 따라 한 발씩 갓바위 부처님을 향해 몸을 옮긴다.

 

아!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하나! 팔공산 산정(山頂)을 빼꼭히 채운 사람들은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마음에 두고 꺼내지 못했던 염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길동무가 귀하다 싶었는데, 먼저 와서 자리 잡고 기도드리는 사람들. 아마 부처님도 일찍 듣는 소원을 잘 기억 하실 것이다.

 

미간처럼 좁혀진 기도객들 사이를 지나 갓바위 부처님 앞에 섰다. 누가 볼까 한 봉지의 쌀과 초 한 자루 밝히고는 고개 드니, 그래도 중생의 소리 하나라도 더 듣고자 어깨 기울여 처연히 앉아 계신다. 다가 갈수록 따라 붙던 구름떼는 흩어진다. 다 뱉어내지 못한 내안의 소리는 석불의 몸통까지 데우는 슬픈 홍매화 속살이었던 것이다. 석불의 배경이 내 눈 안에서 붉어지기 시작했다.

 

바위가 솟아 오른 자리에 우뚝 계신 부처님, 그 부처님이 바라보는 동쪽세계는 흩어졌던 구름들이 한데 몰려 이루고 있는 구름바다, 운해(雲海)였다. 멀리 동해 바다로 빨려드는 듯, 밀물 같은 구름이 출렁거린다. 부처님의 지혜로 우주 만물을 깨닫는다는 해인삼매(海印三昧)의 바다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그 바다가 지금 내 눈 앞에서 펼쳐졌다. 장엄했다.

 

깨달음의 경계선 같은 난간에 내가 붙들려 있다. 여기까지 가져온 내 욕망들이 발목을 부여잡는다. 투둑, 발길질 한 번에 빠져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애초부터 내가 잘못 가져왔다는 생각에 그냥 서 있기로 한다. 연신 사람들이 올라온다. 앞에 보이는 초례봉(醮禮峰)이 이니스프리의 섬처럼 떠 있는 갓바위, 여기는 적멸(寂滅)이였다.

 

글: 김주명

 

 

갓바위 오르는 길(수정).hwp

 

갓바위 오르는 길(수정).hwp
0.02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