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을 읽다/이시하
당신은 헐값에 나를 읽어요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요 침을 바른 당신의 손, 끈끈하고 질척한 당신의 손, 혀 같은 당신의 손이 나를 읽을 때면 내가 꽃인 게, 늘 꺾여야 하는 꽃 같은 여자인 게 싫어져요 당신은 나를 포르노로 읽어요 삼류 비디오 보듯 해요 하이틴 로맨스 정도라면 눈 딱 감고 읽혀줄 텐데요 당신의 충혈된 눈이 무서워요 눅눅한 집 곰팡이 핀 벽 바퀴벌레 우글대는 싱크대 서랍 당신이 나를 읽을 때면 왜 그런 것들이 떠오르죠? 스멀거리는 그림자 때문에 현기증이 일어요 감탄도, 크라이맥스도 아니라고요 당신이 나를 포르노로 읽는 동안 나는 음습한 괴기소설을 상상해요 소리를 지르죠 진저리나는 일상에 대해 불편한 밤꽃 향기에 대해 남아프리카의 어린 꽃들에 대해 에이즈에 대해
오늘도 당신의 붉은 혀는 헐값으로 산 어린 꽃을 읽어요 죽음을 볼록하게 안은 알 밴 꽃들이 웃는 듯, 입을 벌리고 있어요 물, 물, 무울 당신은 언제나 불, 불, 부울로 읽는 군요
이시하 시집 "나쁜 시집" 천년의 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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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상가옥(시인 박윤배의 집)
글쓴이 : 김주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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