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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끌리는 시와 글 모음

[스크랩] 깊이에 대하여/이하석

by 롬복시인 2011. 5. 3.

깊이에 대하여


이하석




자판기 커피 뽑는 것도 시비 거리가 될 수 있는지, 종이컵 속 커피 위에 뜬 거품을 걷어내면 “왜 거품을 걷어내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커피의 깊이를 보기 위하여”라고 대답한다 마음에 없는 말일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에 무슨 근사한 깊이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단치 않은 깊이에도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해 준다 모두 얕다 기실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단찮은 깊이까지 사랑한다 해도, 커피는 어두워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실 어둠의 깊이를 얕볼 수 없다 싸고 만만한 커피지만, 내 손이 받쳐 든 보이지 않는 그 깊이를 은밀하게 캐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걸 누가 쉬이 들여다 볼 수 있단 말인가

출처 : 대구 詩창작원 <수상가옥>(시인 박윤배의 집)
글쓴이 : 金主明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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